디올은 책상에 얹은 팔 위로 고개를 묻었다. 벚꽃색 눈동자는 초록이 떠난 의자를 주시했다. 그녀는 아직 김초록이라는 학생이자, 남자의 여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김초록은 본의 아니었겠지만, 디올의 이상형에 적합하다 못해 완벽한 남자였다. 독수리를 연상시키는 날카로운 눈매와 날 선 명검처럼 보기 좋게 휘어진 콧대. 깡말라 보이지만 가려진 옷감 너머 숨...
느긋한 점심시간의 마루 고등학교. 개미 한 마리 보이지 않던 운동장이 학생들로 가득 찼다. 운동장은 팽팽한 축구 경기가 한창이었다. 그늘 깔린 벤치 아래 여학생 무리가 모여 앉아 있었다. 그들은 입을 모아 급조된 구호를 열심히 외쳤다. 서로 마음에 두고 있는 남학생에게 호감을 얻기 위해 힘겹게 목청을 높였다. 응원 소리에 보답하듯 재빠르게 달려 나간 한 남...
마루고등학교 2학년 3반 교실. 평소라면 한창 수업이 진행되고 있을 시간이었지만, 아직 교사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교과서를 펼치고 있는 학생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수업 준비라도 하고 있어야 하는 시간일텐데 친구끼리 옹기종기 모여 담화를 나누고 있었다. 느지막한 카페의 풍경을 방불케 하는 모습이었다. 괴리감 넘치는 풍경이 펼쳐진 건 이곳뿐만이 아니었다....
아침이 밝았다. 해는 아직 중천보다 낮은 곳에 머무르고 있었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 홀로 뜬 태양이 존재감을 과시했다. 태양에서 삐져 나온 샛노란 햇빛은 스타듀밸리 아파트의 어느 발코니를 향했다. 발코니 창이 활짝 열린 집 안 너머로 금색 머리칼이 분주하게 흩날렸다. 새벽에 진작 눈을 떴던 부지런한 가정부 니엘이었다. 니엘은 집 안을 말끔히 청소하고,...
우렁찬 기상나팔 소리와 함께 김튼튼의 하루가 시작됐다. 요란한 기상나팔 소리가 방 안을 가득 메웠다. 송충이처럼 짙은 눈썹이 요동치더니 눈이 번쩍 뜨였다. 잠에서 깬 김튼튼은 알람을 끄려 머리맡 주변을 샅샅이 뒤졌다. 귀청 떨어질 정도로 큰 나팔 소리가 두통을 불러일으켰다. 기상나팔 소리가 끝나갈 때쯤 간신히 휴대폰을 찾은 김튼튼은 짜증 섞인 한숨을 뱉었다...
지평선 너머 이글거리는 석양이 지고 있다. 석양을 등진 주택 한 채가 그림자에 삼켜졌다. 집 안은 어디 하나 어질러 있지 않고 깔끔했다. 인테리어 하우스처럼 정돈된 모양새였다. 거실 소파에 사람 형태의 그림자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그림자보다 짙은 검은색 눈동자는 무늬 하나 없는 벽지를 주시했다. 소파에 앉아 있던 이는 하로였다. 하로는 아무 말 없이...
느긋한 저녁 시간. 마루 고등학교 주변에 위치한 스타듀밸리 아파트가 석양에 물들었다. 전망 좋은 12층 1201호가 바로 나기 가족이 사는 집이었다. 나기의 부모인 나가람과 이세화는 국내에선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배우다. 세화와 가람은 영화 캐스팅 일순위라 불리는 명배우답게 집보다 촬영장에 머무르는 날이 많았다. 오늘은 운좋게 촬영이 일찍 끝나...
2019년. 2월 XX 일. 마루 고등학교 개학식 당일. 한없이 조용하고 고요했던 마루 고등학교가 활기를 되찾았다. 교무실 안에 많은 교사가 살갑게 웃으며 화담을 나누고 있다. 새로운 신학기. 설레는 긍정 에너지로 가득한 교무실에 홀로 부정 에너지를 뿜어내는 인물이 있었다. 보기 드문 잿빛 머리칼이 인상적인 그녀의 이름은 디오르 니소스. 캘리포니아 주에서 ...
족쇄마을에서 멀지 않은 행앗구 시내. 이곳은 다른 타지역 시내에 비해 규모가 작았다. 그래도 나름 필요한 시설은 빠짐없이 갖추고 있어 가성비 시내라 불리고 있는 곳이었다. 시내 중앙에 위치한 사자 분수대에서 거친 물보라가 쏟아져 내렸다. 주변에 옹기종기 모여 있던 아이들이 꺄르르 소리를 지르며 물보라를 피해 멀리 달아났다. 분수대 주변에는 유독 사람이 많았...
겨울나기 세계관 ~ 내가 내 자캐 쓰려고 뚝딱뚝딱 만든 세계관 ~ 대전이 19XX 년, 서울을 비롯한 전 세계 하늘에서 발생된 전대미문의 사건. 맑디 말던 하늘에서 일어난 균열 너머로 백색 입자와 함께 이능의 것이 현세로 넘어오게 되었다. 대전이가 일어나게 된 이유는 아직 불명이다. 이능의 주민과 몬스터 그 외에 다양한 생명체들이 현세로 넘어오며 세상은 대...
20XX년. 국내에서 으뜸간다 하는 고등학교 중 SNS을 통해 학생들의 무수한 지지를 받고 있는 학교가 있다. 이전화를 봤다면, 누구나 쉽게 유추할 수 있다. 그렇다. 그곳이 바로 마루 고등학교였다. 마루 고등학교는 칠 년 전, 이사장이 젊은 주식가로 바뀌며 완전히 다른 학교의 모습으로 탈바꿈했다. 탈바꿈을 일궈낸 주인공은 새로이 이사장직을 맡은 젊은 여성...
마루 고등학교 건물 뒤편의 작은 정원. 잘 가꾸어진 활엽수와 꽃으로 가득 찬 그곳에 남학생이 한 명이 홀로 자리를 지키고 있다. 누굴 기다리고 있었는지, 연신 정원 입구를 유심히 살폈다. 고개를 내빼고 이곳저곳을 살피는 모습이 미어캣을 연상케 했다. 남학생의 얼굴에 긴장한 티가 역력했다. 그는 바지춤에 열심히 손을 문지르고, 연신 목을 가다듬었다. 정신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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